GRACE
Single Family House, BOEUN
건축의 다양성과 오너먼트
인간의 시지각 시스템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도를 선호한다.
뇌의 기능을 실시간으로 영상화할 수 있는 fMRI 기술의 보급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신경과학의 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은 항상 주변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탐지하며 이를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한 준비에 활용하는데, 주변에 적정한 수준의 정보가 없다면 기본 지각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의 과하게 절제된 면과 선은 그것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현실과 분리된,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의 경우라면 이러한 구성은 감상자에게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하며 일종의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일종의 충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만족감을 느낄 때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미술관 속 작품이 아닌 일상의 배경이 되는 건축이라면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심리적 만족과 함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절대다수의 물품이 산업화, 규격화되어 대량 생산되는 미니멀-단순 취향의 사회에서 건축물은 어떻게 양질의 정보를 가질 수 있을까? 갈수록 시공에서 인건비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실에서 단순히 복잡하게만 설계하는 것은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는 프로젝트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현실에서 접근가능한 복잡성 구현의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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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의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공간들 |
보은주택에서 양질의 정보는 ‘조합’의 방법으로 구현되었다.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각각의 ‘부분’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만나며 다양함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각각의 부분은 경사 지붕, 아치 구조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개별적인 조형 요소이기도 하지만 잠열 활용을 위한 천장 구조체 노출과 같은 패시브 기법도 그 자체로 전체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보은주택 전체를 만드는 주요한 각 부분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두 개의 엇갈린 경사 지붕
2. 내부와 외부를 중재하는 회랑, 중정 등의 전이 공간들
3. 사적인 공간들과 공적인 공간들을 구분하는 평면상 배치
4. 바닥으로부터 2.1미터를 기준으로 상부 벽과 천장 콘크리트 구조를 노출하는 원칙
5. 바닥의 타일 마감이 수직으로 감아 이어지는 마이너스 걸레받이 상세
6. 목재 패널 구조가 노출되고 개구부가 도장 마감되는 가구 상세
이 구성 요소 혹은 구성 원칙들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 교차하며 보은주택 내에 다양한 공간들을 만들어 낸다.
사적인 공간으로 분류되어 북측에 자리 잡는 침실은 낮은 경사 지붕 밑에 놓이며 아늑한 느낌을 준다. 벽체 대부분은 매끈한 페인트로 마감되며 거친 스터코로 마감되는 구조 노출 천장은 높이가 낮아 다운 라이트 조명을 놓기에 부담스럽기에 벽에서 솟아난 듯한 간접조명이 밤을 밝힌다. 반면 공적인 영역으로 분류되며 펼침창을 열어 회랑을 통해 별채 마당으로 확장될 수 있는 취미실은 높은 고측창을 가진 마치 등대와 같은 형상의 밝고 환한 공간이 된다. 공간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면서도 같은 마감 재료, 구조 노출의 원칙, 마감 상세를 공유하며 자연스러운 통일성을 유지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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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경사지붕 아래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내부공간들 |
자연과 함께하는 집
산기슭에 맞닿아 있는 대지에 은퇴를 앞둔 부부가 살게 될 집이기에 ‘자연’은 ‘양질의 정보’라는 신경 미학적 관점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부부는 어떻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
설계 초기 그라스 조경이 우거진 낭만적 풍경의 전원주택을 그렸던 계획안은 건축주의 현실적이고 견고한 생각 앞에 흐려지며 나름의 새로운 방향을 잡았다. 자연에 가까이 있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 정원과 텃밭 일이 보람 있는 취미가 되어야지 중노동이 되면 곤란하다. 정원의 상당 부분은 관리가 쉬운 페데스탈 석재 마당으로 변경되었다. 집과 정원 사이에는 널찍한 회랑을 배치하여 언제라도 햇빛을 피해 쉴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건축주에 의해 반음지 식물로 채워지게 될 중정은 북측 산기슭으로 이어지며 자연을 시각적으로나마 거실 바로 턱 밑까지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친환경 저에너지 주택
자연을 닮고 싶은 집이지만, 단열과 에너지의 측면에서는 단호한 분리가 필요했다. 다음의 다섯 가지 친환경 시스템은 그 결과다.
첫째, 5kW 태양광 발전 시스템. 일반 주택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용량으로, 일상의 전력 소비를 대부분 자체 발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했다. 햇빛이라는 가장 풍족한 자원을 일상의 에너지로 직접 환원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이다.
둘째, 지열 난방. 땅속 일정 깊이의 안정적인 온도를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한겨울에도 거의 일정한 열원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냉난방 겸용 에어컨을 보조로 두어 혹한기에도 안정적인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화석 연료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난방 방식이다.
셋째, 골조 노출을 통한 잠열 활용. 바닥에서 2.1m 이상의 천장과 상부 벽은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노출했다. 콘크리트는 열을 천천히 흡수하고 천천히 방출하는 성질, 즉 잠열이 큰 재료다. 한낮에 데워진 구조체가 밤새 실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거대한 자연 축열기 역할을 하게 된다. 노출 천장의 시각적 매력과 에너지 절감을 함께 의도한 결정이었다.
넷째, 구조용 열교차단재. 콘크리트 구조체가 외부로 돌출되는 회랑이나 처마 부분에 특수한 열교차단재를 적용했다. 보온병 뚜껑과 비슷한 역할로, 열이 새어 나가는 통로를 끊어 주는 부재다. 이 디테일이 없으면 아무리 두껍게 단열재를 시공해도 돌출된 콘크리트를 따라 열이 빠져나가게 된다.
다섯째, 줄기초 외단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매트 기초가 아닌 줄기초 방식을 채택해, 외벽의 단열재가 기초 아래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도록 했다. 땅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 다섯 가지 설계 요소들이 부부가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갈 집의 유지비를 낮추고, 일정한 실내 환경을 보장하며, 노년의 건강을 지키는 실질적인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에서 친환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쾌적함과 매달의 공과금 고지서에 그대로 반영되는 실용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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